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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자에는 호랑이처럼 약한자에는 비둘기처럼/스코필드
- 기술과학 > 농업,수의학,수산학
- 김승태, 유진, 이항 [저] l 초판 2012.04.10 l 발행 201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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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분류 | 기술과학 > 농업,수의학,수산학 |
---|---|
ISBN | 9788952113160 |
초판발행일 | 2012.04.10 |
최근발행일 | 2019.04.25 |
면수/판형 | 640(쪽) / |
국내 최초 공개되는 스코필드 박사의 영문 기고문 번역 수록
스코필드 박사 기고문은 일제 만행에 대한 외국인으로서 객관적 비판 담아 3·1 독립운동사적 사료 가치 높아
이 책의 전반부(Ⅰ, Ⅱ)는 스코필드가 남긴 1차 자료를 중심으로 연대순으로 편집하였고, 후반부(Ⅲ, Ⅳ)는 스코필드에 대한 국내외 인사들의 회고의 글과 그에 관한 주요 연구 논문을 실었다. 부록에는 본문에 번역되어 실려 있는 영어로 된 원문과 스코필드의 연보를 실었다.
Ⅰ. 일제강점기 스코필드 박사의 보고서 및 기고문
01. 스코필드 박사의 일제 만행 보고서
1919년 4월 15일에 일어난 일본군의 제암리교회 방화․학살 사건에 대한 스코필드의 캐나다장로회 해외선교본부에 보낸 보고서와 그가 수촌리의 방화 학살 만행에 관해 장로회 기관지인 Presbyterian Witness에 기고한 글을 번역하여 실었다. 수촌리에 관한 보고서도 같은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이 보고서는 장로회 기관지인 Presbyterian Witness 1919년 7월 26일자에 실린 것에서 번역하여 실었다.
02. 스코필드 박사의 식민지 한국의 상황에 대한 영자 신문 기고문
1919-1920년 사이에 스코필드 박사가 일본에서 발행된 영자 신문 재팬 애드버타이저(Japan Advertiser)와 캐나다 토론토에서 발행된 글로브(The Globe) 비롯한 몇 개 영자 신문 잡지들에 기고한 14개의 기고문을 번역하여 실었다. 여기서 그는 일제 고관들의 안일한 한국 상황 인식과 피상적인 개혁을 비판하면서 근본적인 동화정책과 민족차별을 철폐하고, 한국인에 대한 강압과 만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한국의 독립과 자치를 허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03. 스코필드 박사의 국내 신문 기고문
동아일보 창간호에 기고한 스코필드의 글과 1926년 6월 한국을 일시 방문했다가 캐나다로 돌아가면서, 그리고 캐나다에 있으면서 크리스마스 무렵 국내 신문을 통해 한국인에게 보낸 3편의 편지 형식의 기고문을 실었다.
Ⅱ. 해방 이후 스코필드 박사의 기고문
해방 후 스코필드가 은퇴하고 한국에 다시 와서 국내의 언론에 기고한 3․1운동에 대한 회고나 당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충고, 현대 사조에 대한 감상 등 다양한 내용의 기고문들을 한데 모으고, 영문으로 된 것은 번역하여 실었다.
마지막에 실은 “박정희 신임 대통령을 위한 기도문”은 스코필드가 언론에 기고한 글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드린 그의 진심을 담은 기도문이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그의 기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에 번역하여 실었다. 이 기도문은 1963년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취임을 이틀 앞둔 12월 15일 주일에 서울 용산에 있던 군인교회에서 열린 취임축하예배에 직접 박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부탁을 받고 드린 기도문이다.
Ⅲ.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회고
국내외 주요 인사들의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회고의 글들을 실었다. 외국인이 영문으로 쓴 글들은 번역하여 실었다.
Ⅳ.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연구 논문
여기에는 스코필드 박사에 관한 주요 연구 논문 4편을 발표 연대순으로 실었다. 여기에서도 영문으로 된 논문은 번역하여 실었다.
부록
앞의 본문에서 번역하여 실은 영문 기고 자료의 원문을 실었다.
스코필드 박사 기고문은 일제 만행에 대한 외국인으로서 객관적 비판 담아 3·1 독립운동사적 사료 가치 높아
이 책의 전반부(Ⅰ, Ⅱ)는 스코필드가 남긴 1차 자료를 중심으로 연대순으로 편집하였고, 후반부(Ⅲ, Ⅳ)는 스코필드에 대한 국내외 인사들의 회고의 글과 그에 관한 주요 연구 논문을 실었다. 부록에는 본문에 번역되어 실려 있는 영어로 된 원문과 스코필드의 연보를 실었다.
Ⅰ. 일제강점기 스코필드 박사의 보고서 및 기고문
01. 스코필드 박사의 일제 만행 보고서
1919년 4월 15일에 일어난 일본군의 제암리교회 방화․학살 사건에 대한 스코필드의 캐나다장로회 해외선교본부에 보낸 보고서와 그가 수촌리의 방화 학살 만행에 관해 장로회 기관지인 Presbyterian Witness에 기고한 글을 번역하여 실었다. 수촌리에 관한 보고서도 같은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이 보고서는 장로회 기관지인 Presbyterian Witness 1919년 7월 26일자에 실린 것에서 번역하여 실었다.
02. 스코필드 박사의 식민지 한국의 상황에 대한 영자 신문 기고문
1919-1920년 사이에 스코필드 박사가 일본에서 발행된 영자 신문 재팬 애드버타이저(Japan Advertiser)와 캐나다 토론토에서 발행된 글로브(The Globe) 비롯한 몇 개 영자 신문 잡지들에 기고한 14개의 기고문을 번역하여 실었다. 여기서 그는 일제 고관들의 안일한 한국 상황 인식과 피상적인 개혁을 비판하면서 근본적인 동화정책과 민족차별을 철폐하고, 한국인에 대한 강압과 만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한국의 독립과 자치를 허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03. 스코필드 박사의 국내 신문 기고문
동아일보 창간호에 기고한 스코필드의 글과 1926년 6월 한국을 일시 방문했다가 캐나다로 돌아가면서, 그리고 캐나다에 있으면서 크리스마스 무렵 국내 신문을 통해 한국인에게 보낸 3편의 편지 형식의 기고문을 실었다.
Ⅱ. 해방 이후 스코필드 박사의 기고문
해방 후 스코필드가 은퇴하고 한국에 다시 와서 국내의 언론에 기고한 3․1운동에 대한 회고나 당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충고, 현대 사조에 대한 감상 등 다양한 내용의 기고문들을 한데 모으고, 영문으로 된 것은 번역하여 실었다.
마지막에 실은 “박정희 신임 대통령을 위한 기도문”은 스코필드가 언론에 기고한 글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드린 그의 진심을 담은 기도문이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그의 기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에 번역하여 실었다. 이 기도문은 1963년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취임을 이틀 앞둔 12월 15일 주일에 서울 용산에 있던 군인교회에서 열린 취임축하예배에 직접 박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부탁을 받고 드린 기도문이다.
Ⅲ.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회고
국내외 주요 인사들의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회고의 글들을 실었다. 외국인이 영문으로 쓴 글들은 번역하여 실었다.
Ⅳ.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연구 논문
여기에는 스코필드 박사에 관한 주요 연구 논문 4편을 발표 연대순으로 실었다. 여기에서도 영문으로 된 논문은 번역하여 실었다.
부록
앞의 본문에서 번역하여 실은 영문 기고 자료의 원문을 실었다.
목차
화보
일러두기
추천사 | 박유철
머리말 | 유 진
[해제] 한국을 조국처럼 한국인을 동포처럼 사랑한 캐나다인, 스코필드 박사 자료 | 김승태
I. 일제 강점기 스코필드 박사의 보고서 및 기고문
1. 스코필드 박사의 일제 만행 보고서
01. 제암리 학살 만행 보고서(1919. 4)
02. 수촌리 학살 만행 보고서(1919. 7. 26)
2. 스코필드 박사의 식민지 한국의 상황에 대한 영자 신문 기고문
01. 한국 사태를 조사할 제국조사위원회(1919. 7. 1)
02. 한국 민심의 파악: 일본의 가장 중대한 문제와 실패의 원인(1919. 8. 2)
03. 한국에서의 개혁 I: 한국에 대한 일본의 도전 - 불가능한 정책(1919. 8. 26)
04. 한국에서의 개혁 II: 캐나다 혹은 아일랜드? - 조사의 필요성(1919. 8. 27)
05. 한국에서 행해지는 고문: 미즈노 박사가 해결할 문제(1919. 11. 29)
06. 한국에서 죄수들에게 행해지는 고문: 일제 통치 하에서의 죄악(1920. 1)
07. 한국의 개선책: 새로운 제도의 비평적이고 건설적인 조망(1920. 3. 12)
08. 한국의 개선책: 비평적 조망 II - 헌병경찰제도의 폐지(1920. 3. 13)
09. 한국에서의 개혁 III - 실패의 원인: 가혹한 통치 탓에 진정한 개선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다(1920. 3. 14)
10. 한국: 프랭크 헤론 스미스 목사에 대한 답변(1920. 4. 10)
11. 압제자의 멍에 아래 신음하는 한국: 서울의 한 의료인이 전하는 한국의 자유를 향한 부르짖음(1920. 7. 12)
12. 한국에서 일본의 개혁(1920. 7. 17)
13. 한국의 미래: 하라 일본 총리와의 인터뷰(1920. 9. 4)
14. 한국의 여성들은 ‘힘’을 가지고 있다(1920. 6. 7)
3. 스코필드 박사의 국내 신문 기고문
01. 한국 발전의 요결(1920. 4. 1)
02. 조선의 친구여(1) 캐나다로 귀국 중인 스코필드씨 편지(1926. 9. 17)
03. 조선의 친구여(2) 실행이 제일(1926. 9. 19)
04. 나의 경애(敬愛)하는 조선의 형제여–스코필드 박사 서한(1927. 1. 5)
05. 경애(敬愛)하는 조선 형제에게(1931. 12. 26)
II. 해방 이후 스코필드 박사의 기고문
01. 민심은 공포에 잠겨 있다 의사당 앞에 무장경관이라니(1959. 1. 3)
02. 의, 용기, 자유의 승리(1960. 4. 28)
03. 내가 본 한국혁명(1961. 1. 8)
04. 한국 교회의 어제와 오늘(1961. 3)
05. 정직은 번영에의 유일한 길이다(1961. 4)
06. 나는 이렇게 본다. 한국의 군사혁명(1961. 6. 15)
07. 3·1 운동(1962. 3. 2)
08. 서울대의 문제점(1962. 12. 3)
09. 1919년 3월 1일과 1963년 3월 1일(1963. 2. 28)
10. 스코필드 박사, 박의장에게 서한(1963. 3. 23)
11. 3·1 독립선언기념탑 제막식에서 한 스코필드 박사의 축사(1963. 8. 17)
12. 나도 한국의 분신, 할 말은 해야겠다(1963. 9. 13)
13. 내핍은 수범(垂範)에서만(1964. 1. 16)
14. 사건의 전모 밝혀야(1964. 3. 3)
15. 나는 왜 돌아왔나?(1965. 1. 4)
16. 1919년 3월 1일, 삼일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1966)
17. 하나로 뭉친 독립만세(1969. 3. 1)
18. 3·1 운동은 한국 정신의 상징(1969. 3. 1)
19. 현대사조(1967~1969)
20. 한국 국민에 보내는 메시지(1970. 3. 1)
21. 스코필드 박사 병상 단상록(1970. 4. 16)
22. 박정희 신임 대통령을 위한 기도문(1963. 12. 15)
III.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회고
01. 석호필 박사의 최후 | 백난영, 전택부(1970. 5)
02. 고 스코필드 박사 간병 365일 | 태신자(1970. 4. 17)
03. 1919년 3·1 운동과 선교사들 | J. 어니스트 피셔(J. Ernest Fisher)(1975. 3)
04. 구두 밑창에 3·1 운동 사진 필름 숨겨 임정(臨政)에 전달 | 정환범(1997. 5)
05. 스코필드: 조선을 치유한 의사 | 정운찬(2004. 2)
06.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 비범한 수의학자 | 더글라스 C. 메이플스던(Douglas C. Maplesde)(2005)
07. 국립묘지에 잠든 벽안의 애국지사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 | 이삼열(2006. 3)
IV.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연구 논문
01.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와 한국인의 민족의식 | 도레타 모티모어(Doretha E. Mortimore)
02.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의 영성 | 남태욱
03. “주동자:”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와 한국 독립운동 | 바바라 리걸트(Barbara Legault), 존 프레스콧(John F. Prescott)
04. 스코필드 박사의 의료(교육)·사회선교와 3·1 독립운동 | 이만열
부록
I. 원문
II. 스코필드 박사 연보
찾아보기 | 인명
일러두기
추천사 | 박유철
머리말 | 유 진
[해제] 한국을 조국처럼 한국인을 동포처럼 사랑한 캐나다인, 스코필드 박사 자료 | 김승태
I. 일제 강점기 스코필드 박사의 보고서 및 기고문
1. 스코필드 박사의 일제 만행 보고서
01. 제암리 학살 만행 보고서(1919. 4)
02. 수촌리 학살 만행 보고서(1919. 7. 26)
2. 스코필드 박사의 식민지 한국의 상황에 대한 영자 신문 기고문
01. 한국 사태를 조사할 제국조사위원회(1919. 7. 1)
02. 한국 민심의 파악: 일본의 가장 중대한 문제와 실패의 원인(1919. 8. 2)
03. 한국에서의 개혁 I: 한국에 대한 일본의 도전 - 불가능한 정책(1919. 8. 26)
04. 한국에서의 개혁 II: 캐나다 혹은 아일랜드? - 조사의 필요성(1919. 8. 27)
05. 한국에서 행해지는 고문: 미즈노 박사가 해결할 문제(1919. 11. 29)
06. 한국에서 죄수들에게 행해지는 고문: 일제 통치 하에서의 죄악(1920. 1)
07. 한국의 개선책: 새로운 제도의 비평적이고 건설적인 조망(1920. 3. 12)
08. 한국의 개선책: 비평적 조망 II - 헌병경찰제도의 폐지(1920. 3. 13)
09. 한국에서의 개혁 III - 실패의 원인: 가혹한 통치 탓에 진정한 개선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다(1920. 3. 14)
10. 한국: 프랭크 헤론 스미스 목사에 대한 답변(1920. 4. 10)
11. 압제자의 멍에 아래 신음하는 한국: 서울의 한 의료인이 전하는 한국의 자유를 향한 부르짖음(1920. 7. 12)
12. 한국에서 일본의 개혁(1920. 7. 17)
13. 한국의 미래: 하라 일본 총리와의 인터뷰(1920. 9. 4)
14. 한국의 여성들은 ‘힘’을 가지고 있다(1920. 6. 7)
3. 스코필드 박사의 국내 신문 기고문
01. 한국 발전의 요결(1920. 4. 1)
02. 조선의 친구여(1) 캐나다로 귀국 중인 스코필드씨 편지(1926. 9. 17)
03. 조선의 친구여(2) 실행이 제일(1926. 9. 19)
04. 나의 경애(敬愛)하는 조선의 형제여–스코필드 박사 서한(1927. 1. 5)
05. 경애(敬愛)하는 조선 형제에게(1931. 12. 26)
II. 해방 이후 스코필드 박사의 기고문
01. 민심은 공포에 잠겨 있다 의사당 앞에 무장경관이라니(1959. 1. 3)
02. 의, 용기, 자유의 승리(1960. 4. 28)
03. 내가 본 한국혁명(1961. 1. 8)
04. 한국 교회의 어제와 오늘(1961. 3)
05. 정직은 번영에의 유일한 길이다(1961. 4)
06. 나는 이렇게 본다. 한국의 군사혁명(1961. 6. 15)
07. 3·1 운동(1962. 3. 2)
08. 서울대의 문제점(1962. 12. 3)
09. 1919년 3월 1일과 1963년 3월 1일(1963. 2. 28)
10. 스코필드 박사, 박의장에게 서한(1963. 3. 23)
11. 3·1 독립선언기념탑 제막식에서 한 스코필드 박사의 축사(1963. 8. 17)
12. 나도 한국의 분신, 할 말은 해야겠다(1963. 9. 13)
13. 내핍은 수범(垂範)에서만(1964. 1. 16)
14. 사건의 전모 밝혀야(1964. 3. 3)
15. 나는 왜 돌아왔나?(1965. 1. 4)
16. 1919년 3월 1일, 삼일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1966)
17. 하나로 뭉친 독립만세(1969. 3. 1)
18. 3·1 운동은 한국 정신의 상징(1969. 3. 1)
19. 현대사조(1967~1969)
20. 한국 국민에 보내는 메시지(1970. 3. 1)
21. 스코필드 박사 병상 단상록(1970. 4. 16)
22. 박정희 신임 대통령을 위한 기도문(1963. 12. 15)
III.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회고
01. 석호필 박사의 최후 | 백난영, 전택부(1970. 5)
02. 고 스코필드 박사 간병 365일 | 태신자(1970. 4. 17)
03. 1919년 3·1 운동과 선교사들 | J. 어니스트 피셔(J. Ernest Fisher)(1975. 3)
04. 구두 밑창에 3·1 운동 사진 필름 숨겨 임정(臨政)에 전달 | 정환범(1997. 5)
05. 스코필드: 조선을 치유한 의사 | 정운찬(2004. 2)
06.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 비범한 수의학자 | 더글라스 C. 메이플스던(Douglas C. Maplesde)(2005)
07. 국립묘지에 잠든 벽안의 애국지사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 | 이삼열(2006. 3)
IV.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연구 논문
01.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와 한국인의 민족의식 | 도레타 모티모어(Doretha E. Mortimore)
02.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의 영성 | 남태욱
03. “주동자:”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와 한국 독립운동 | 바바라 리걸트(Barbara Legault), 존 프레스콧(John F. Prescott)
04. 스코필드 박사의 의료(교육)·사회선교와 3·1 독립운동 | 이만열
부록
I. 원문
II. 스코필드 박사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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